상도문학당 대표 프로그램 ‘도문농요 인형극’ <상도문 사람들>.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최초 시행한 2023~2024 ‘로컬100(지역문화매력 100선)’에 강원특별자치도가 전국 최다인 20건에 선정되었다. 문화명소 10곳, 콘텐츠 9개, 명인 1명이다. 이 중 로컬문화명소로 눈에 띄는 곳은 강릉의 ‘시나미 명주 골목’, 속초의 ‘아바이마을’이다. 강릉 명주 골목은 구도심의 골목을 파랑달협동조합이라는 문화단체가 상주하며 주민과 함께 문화적 재생의 방식으로 조성하였다. 지역 골목에 새로운 문화를 입히자 관광으로 연결된 좋은 사례이다. 시나미는 강릉사투리로 ‘천천히’라는 뜻을 갖고 있다, ‘대도호부관아(과거)-명주동(근현대)-현대’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거리로 옛 적산가옥과 관아건물 같은 장소성을 가진 건물부터 명주예술마당, 작은공연장 등의 문화공간도 보유하고 있다. 대표 프로그램은 생활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에 선정된 ‘시나미 명주나들이’ 이다. 속초 아바이마을은 갯배, 오징어순대 등 차별화된 실향민 문화가 속초의 로컬이 된 사례로 주목받는다. 아트플랫폼 갯배, 오징어 할복장 등의 문화거점이 있지만 주민과의 다양한 문화활동은 부족했다. 최근 속초문화도시의 일환으로 공존문화도시 거점으로 오징어할복장이 활용되면서 2024년이 기대된다.
로컬 100에 선정된 문화명소는 지역 고유의 가치를 반영한 장소의 복원, 주민과 활동가(단체)의 협업이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곳이다. 마을의 새로운 지역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마을문화가 형성되면서 최근 유행하는 로컬콘텐츠가 된 것이다. 강릉 명주동과 아바이마을은 주민과 전문가의 협업에서 차이가 보인다. 명주동에는 파랑달협동조합이 있고 아바이마을에는 없는 것이다.
주민과 마을, 예술의 연결
‘상도문 파인아트 페스티벌’
지난 18일 상도문 돌담마을에서 ‘상도문 파인아트 페스티벌’이 개최되었다. 당초 관송정이라고 이름 지은 솔숲 옆 야외 문화공간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강풍 예보 때문에 마을에서 운영하는 비닐하우스로 옮기게 되었다. 속초민예총 공연분과의 공연과 상도문학당의 중요 콘텐츠가 오랜만에 선보였다. 상도문학당은 지난 2019년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으로 형성된 마을 문화 동아리이다. 속초도문농요 인형극 ‘상도문 사람들’, 상도문 500년 묵은 장맛과 손맛을 맛볼 수 있는 ‘도문밥상’, ‘어르신덕담 손글씨’ 회원의 스톤아트가 중요 프로그램이다. 코로나로 인해 멈춰버린 상도문 학당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안부를 나누고 기량을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20년 지역문화대표브랜드에 선정될 정도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강릉 명주동의 ‘파랑달 협동조합’ 같은 마을 친화적인 문화단체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상도문학당 프로그램에 관심을 기울인 단체는 속초민예총이다. 지난 2021년에 이어 2023년에는 강원문화재단 공모사업 대상지로 상도문 돌담마을을 선택한 것이다.
속초민예총 정은희 사무국장은 “상도문의 문화콘텐츠는 이미 완성되어 있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속적인 활동이 이뤄졌다면 로컬100선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아카이빙과 커뮤니티, 연극의 만남
‘아야진 뽕’
고성에서 활동하는 극단 루트의 작품 <아야진 뽕>(연출 조희봉)은 마을주민 아카이빙과 제작과정의 커뮤니티를 통해 한편의 작품을 완성시킨 드문 사례이다. 배우들이 직접 주민을 만나 주민의 삶을 구술하는 과정에서 녹음과 영상 아카이빙이 이뤄지고 그 서사를 캐릭터화하여 배우가 직접 연기를 한다. 조희봉, 손석배, 김영주 세 배우의 연기이자 독백은 그 자체로 아야진 주민 세 명의 삶이었고 아야진이라는 마을의 또 다른 풍경이 되어버렸다.
지난 18일 오후 5시 토성면 하나로마트 2층 강당에서 펼친 공연은 100명이 넘는 지역주민이 모여들어 이웃의 이야기가 작품이 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연극 중간중간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터진다. 아야진 주민과 그 이웃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반응일 터이다. 한편에서는 이웃의 그 지난한 삶이 자신의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충혈된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제작진은 거침없고 꾸밈없다보니 촌스럽고 익숙한 그 감흥을 ‘뽕’이라 이름지었다. 주민 연극과 다른, 주민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연극은 익숙하지 않은 감동의 순간을 선물했다.
연극 <아야진 뽕>은 예술이 마을주민과 만나고 그 연결이 작품이 되어 마을의 고유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시대에 주민과의 ‘뽕’끼 넘치는 작품제작 과정은 아야진을 넘어 거진 빨래골 뽕, 장신리 소똥령 뽕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장기 기획이 될 수 있고 그 자체로 문화적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머물고 싶은 마을은 안전하게 연결되고 창조적으로 교류할 때 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하루, 속초와 고성에서 만난 작은 행사는 마을과 예술의 연결이 고유의 서사를 만들어내면서 매력적인 마을이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는 연결자가 필요하다. 다양한 주체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연결자는 행정이나 재단 같은 중간조직이 하기 힘든 역할이다. 다중재난과 지역 인구소멸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김인섭 전문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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